대해서는 이전에 과거에 떨어지고 아버지가 죽고 그리고 결혼이 실패 되면서 이런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그의 복잡한 심성으로 인해 그를 깡패로 몰아 넣었다는 말이 많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인생에 대해서 서술해 놓도록 해 보겠습니다. 김익두목사님은 1874년 11월 3일, 황해도 안악
“예수보다 더 귀한 존재는 나에게 있지 아니합니다. 나의 이름이나 소유나 나의 고난이나 평안이 다 예수를 위하여만 필요하였고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죽거나 살거나 내 평생 사랑할 이는 예수뿐입니다. 어찌하여 예수를 사랑하느냐? 나는 예수를 믿어 병 나음을 얻었고 모든 難문제를 해결하였습니
목사님의 4남인 주광조씨가 쓴 글에서는 어렸을 때 앓았던 안질 때문에 도저히 더 책을 읽거나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며 휴학의 이유를 들었다. 이듬해 그는 이기선 목사의 중매로 1917년 김해교회 출신으로 신교육을 받은 안갑수와 결혼하였다. 그러던 중 삼일운동을 겪었고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
1. 서론
김익두 목사 전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귀한 복음이 이 불모지 같은 조국에 김익두라는 귀한 종을 통하여 한국에 성령의 불바람과 함께 선교의 큰 공헌과 귀한 업적을 통하여 나타난 부흥의 역사를 다시 재조명하고 빈들에 마른 풀과 같은 영적인 갈급함 속에서 있는 우리에게 귀한 역사적 산
신학(Theologie)이라는 말은 인식, 오성, 말씀을 뜻하는 로고스(Logos, λογο?)와 하나님을 뜻하는 테오스(Theos, θεο?)라는 두 가지 말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Theo-logie는 신인식, 신론, 신지식 등으로 불리어지며, 하나님을 참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표현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라는 말 그 자
김익두 목사였고, 감리교회에서는 신비주의 부흥사 이용도였다.
이들이 이끄는 사경회와 부흥회의 물결이 전국 교회를 휩쓸게 될 때에 교회 안에서는 잡다한 분파운동과 이단 사이비들도 출몰하게 되었다. 먼저 이들 인물을 중심으로 1920~30년대의 교회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 후에 이 시기에
교회사적인 연구에 초점을 맞춰 내용이 전개되어짐으로 그 당시의 삶을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게 함으로 많은 도전을 던져준 책이다. 또한 한국의 부흥운동을 세계교회의 흐름 가운데서 파악함으로서 세계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전 세계 곳곳에서 폭발되었던 성령의 강한 역사를 책을 통해 볼
목사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손종일 장로(부친)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전통적인 유교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1909년에 7살 된 손양원과 함께 입교하였다. 10년간의 충실한 신앙생활의 결과 1919년 장로 안수를 받았다. 같은 해 3.1운동 주도하였다는 죄목으로 1년 간 옥고를 치른다. 1925년부터 새벽기도
교회사에 있어서 활발하게 일어났던 기독교교육운동을 탐구하여야 하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전후해서 수 많은 기독교학교를 설립했던 한국 교회 신앙의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교회를 짓기 전에 학교부터 세우고, 기독교 인재를 양성하여 민족을 구하고자 했던 구국운동의 정신으로
(2) 신약에 나타나는 장애(인)관
1)장애인과 예수님
①4복음서에 나온 예수님의 사역을 살펴보면, 장애인은 예수님의 사역대상이었고 이는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일이었다. 이는 이사야 61장 1-3절의 말씀이 누가복음 4장 16-21절과 7장 22절에서 응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치유사역